
데크 바닥에는 작은 태양광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낮 동안 빛을 모았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켜지는 조명이다. 경사진 묘역을 따라 길게 이어진 데크를 비추고, 방문자가 어두운 길에서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된 듯했다.
입구의 안내문에는 개방 시간이 오후 6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조명이 켜질 시간이 되면 방문자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표시다. 어두워진 뒤 켜지는 불빛은 그 시간에 이곳을 찾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문이 닫힌 뒤 관리자가 이동하거나 시설을 점검할 때에는 쓰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방문객을 위한 야간 조명은 아니다.
이 묘역을 처음 찾은 것은 2년 전, 그 때도 여름이었다. 당시에는 정비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데크와 울타리가 완성되고, 잔디가 촘촘이 깔리고, 1미터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와 식물이 새로 심겨 있었다. 경사면과 묘역 주변은 깔끔히 정돈되었고, 방문자가 묘역을 둘러볼 수 있는 동선도 만들어졌다.
새로 조성된 묘역 울타리 바깥에는 2년 전 보았던 잘린 나무의 거대한 밑동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절단면의 색이 밝고 톱 자국도 선명해, 벌목된 지 오래되지 않은 듯 보였다. 밑동은 새로 설치된 울타리에 바짝 붙어 있었고, 굵은 뿌리 하나가 울타리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밑동의 둘레와 사방으로 뻗은 뿌리를 보면 상당히 큰 나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묘역과 그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만한 아름의 나무는 달리 보이지 않았다. 묘역으로 오는 길에 300년이 넘는 보호수들을 보았는데, 굵기만 놓고 보면 이 나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밑동만으로 정확한 수령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나 오래 되어 보이는 나무를 왜 베었을까. 병들어서일까, 아니면 새로 조성하는 묘역의 전경을 가려서일까.
2년 뒤 다시 찾았을 때 밑동은 풀과 덩굴에 둘러싸여 있었다. 2024년 사진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던 절단면과 뿌리는 자라난 식생에 일부 가려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조금 대견했다.
오래된 묘역을 보존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오래된 것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묘와 봉분은 보존 대상으로 선택되었지만, 기존의 큰 나무는 제거되었고 그 주변에는 잔디와 어린 조경수가 새로 배치되었다. 보존은 단순한 유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제거할 것인지를 다시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한 문중의 묘와 그 주변은 이러한 제거와 재배치를 거쳐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이 된다.
그럼에도, 이곳이 완전히 공공 공간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안내문은 문중이 동작구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일반인에게 묘역을 개방했다고 밝힌다. 방문객이 이용 규칙을 어길 경우 다시 폐쇄할 수 있다는 경고도 붙어 있다. 공공자금으로 관람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시민의 출입은 소유자가 조건부로 허락한 방문으로 남는다. 관람 환경을 조성하는 비용은 공공이 부담하고, 개방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사적 소유자가 유지하는 것이다.
문중이 묘역을 관리하고 출입 시간을 정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묘역은 사적 소유와 제례, 관리 책임이 겹쳐 있는 장소다. 방문객의 쓰레기 투기나 훼손을 우려하는 것 역시 근거 없는 걱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공공자금으로 관람시설과 조경, 접근로를 조성했다면, 그 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물어야 한다. 시민의 접근을 위한 공공사업인지, 사적 묘역의 보존과 관리에 공공비용을 투입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정비된 경사면에서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오래된 주택과 골목, 새로 지어진 공동주택과 앞으로 재개발될 구역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한쪽에서는 오래된 묘역을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해 돌을 정비하고 나무를 심고 접근로를 만든다.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과 골목을 노후하고 불편한 주거환경으로 분류해 철거를 준비한다. 묘역은 오래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주거지는 오래되었기 때문에 정비가 필요한 대상으로 판정된다. 같은 오래됨이 한쪽에서는 보존의 근거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거의 근거가 된다.
두 장소에 배분되는 자원과 가치의 비대칭은 여기에서 더 선명해진다. 죽은 사람의 장소에는 공공 비용을 들여 돌과 나무, 잔디와 조명을 더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집은 노후했다는 이유로 제거될 대상으로 분류된다. 과거의 기념물에는 보존의 가치가 인정되면서, 현재의 거처와 그곳에서 이어지는 생활 관계에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다.
이번 현장 세미나에서 도시재생 사업지와 그에 인접한 재개발 예정지를 함께 본 이유도 이 간극을 보기 위해서다. 도시재생과 재개발은 흔히 보존과 철거의 대립처럼 설명되지만, 종종 두 방식이 결합하기도 한다. 재개발 계획이 전면 철거에 대한 비판을 반영해 기존의 건물과 골목, 지역의 역사적 요소를 일부 남기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개발이 기존 지역의 일부를 보존하는 것과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재개발 과정에서 보존 대상으로 선택되는 것은 대개 생활의 지속 조건이 아니라 개발 이후에도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의 외관과 골목의 형태, 혹은 지역의 이야기다. 재개발은 보존과 재생의 언어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곧 거주민의 권리와 생활 관계를 보호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무엇을 남길지는 개발 계획 안에서 다시 선별되고, 선택된 건물과 골목, 지역의 역사는 새롭게 조성될 공간의 정체성과 상품가치를 높이는 자원으로 재배치된다. 건물의 껍데기와 지역의 이미지는 남아도, 그 장소를 살아 있게 했던 사람들과 생활 관계는 사라질 수 있다.
물어야 할 것은 보존이 재개발에 포함되었는가가 아니다. 무엇이 보존 대상으로 선택되었고, 누구의 생활이 보호되었으며, 변화 이후에도 기존 주민과 상인이 그곳에 머물 수 있는가다. 보존이 곧 보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주민과 상인의 거주와 생계가 지속되지 못한다면, 건물과 골목의 일부가 남는다 해도 보호된 것은 단지 장소의 외관과 이미지에 한정될 뿐이다.
오후 6시가 지나면 묘역의 문은 닫히고 데크의 조명은 켜진다. 그 불빛은 이 공간을 둘러싼 경계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경계 안에는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승인된 과거가 정돈되어 있다. 경계 밖에는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철거를 앞둔 집들이 남아 있다.
도시는 모든 오래된 것을 보존하지 않는다. 무엇을 역사로 남길 것인지, 무엇을 노후한 잔여물로 처리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그 선택의 기준을 따라가면 도시가 누구의 과거에 비용을 지불하고, 누구의 현재에는 퇴거와 이동을 요구하는지가 드러난다.
2026.7.26
권신경아(權申庚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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